한국차계의 현실과 해결책에 대한 많은 의견이 있다. 최성민씨가 한국차 위기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기고를 보내왔다. 본지는 최성민씨의 기고문에 대한 다른 견해에 대한 의견이 있는 분들의 기고가 온다면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한국 차가 질식상태에 있다. 2007년 이래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얼마전까지 홈페이지를 열고 활기차게 홍보·판매를 하고 있던 유명 다원이나 명인들이 홈페이지 운영을 3~4년 전 상황에서 멈춰버린 곳이 한 두 곳이 아닌 사실에서 한국 차 현실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지난 해 커피 소비량이 6조원인데 비해 국산 차 소비량은 4000억에 그쳤다는 통계자료도 나와 있다.
한국 차의 쇠퇴 원인에 대해 차인이나 제다인, 차농가, 차 관련 종사자들은 커피와 중국차의 범람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남탓할 일이 아니다.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을 남의 몸에서 찾으려 하는 것과 같은 꼴이기 때문이다. 한국 차 쇠퇴의 시작은 2007년 한 방송 프로그램(KBS <소비자고발>)의 무분별한 ‘티백 녹차의 농약 잔류량’ 보도 파문에서 비롯됐지만, 그 기억이 잊혀질 때도 됐는데 소비자들이 한국 차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왜일까? 국내 소비자들이 국산 차에 대한 실망감을 돌릴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욱 심각한 일이다.
일부 차인들과 당국의 위기상황 인식은 2015년 '차진흥법' 제정과 2016년 '제다' 문화재 지정을 낳았다. 이에 따라 차 관련 각종 지원의 길이 열렸다. 그런데 혹시나가 역시나이다. 최근 민간단체들이 사단법인으로 변신하여 ‘차 관련 교육기관'이라는 명분으로 각종 차 관련 교육과 차 관련 행사(전시회, 다회 등)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단체들의 난립이나 차 관련 행사의 난무가 한국 차의 위기 상황과 그 원인을 정확히 인식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순수하고 절실한 마음에서 비롯됐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적쟎은 단체들의 활동이나 행사가 눈먼 돈 타내기와 '돈 쓰는 맛'에 넋을 잃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 차가 망해가고 있는 현실을 부채질이나 하듯이 거의 모든 차 관련 전시회나 박람회의 주류는 중국 보이차나 차 주변 아이템들이다. 증상의 심각함이 이 지경이고 보면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특단의 대책은 문제의 본질과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자, 한국 차가 근본에 충실한가? 한 마디로 차에서 가장 중요한 차향茶香을 제대로 내는 차가 있느냔 말이다. 나는 한국 차 쇠퇴(머지 않아 ‘쇠망’으로 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의미에서 ‘쇠퇴’라는 표현을 씀)의 근본 원인이 한국 차 제다 및 ‘좋은 차에 의한 다도’의 ‘수양 효과’에 대한 몰이해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음료수와의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는 한국 차의 차별성 또는 정체성은 곧 ‘다도’를 이루는 차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은 곧 ‘차향’이다. 향香은 ‘향기香氣’라고도 하는 것이어서 차향은 차의 기氣의 대표로 간주돼 왔다. 차향이 기氣로 인식된다는 것은 동양철학 수양론의 기틀인 ‘기론氣論’에 이론적 맥락이 닿아있다. 즉, 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차향이고, 차를 마셨을 때 차향은 일종의 우주의 청기淸氣로서 우주·자연과 나를 연결해주는 수양매개체의 기능을 하여 ‘자연 합일’의 ‘다도’를 완성해 준다.
이러한 차의 차별성(차향의 중요성)을 모르고, 돈만 생각하며 한꺼번에 솥에 찻잎을 잔뜩 넣고 300도~400도나 되는 ‘용광로’에서 찻잎을 녹여내다시피 하니 제대로 차향을 내는 차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한국 차의 차향을 망치는 ‘구증구포’라는 망념·망언이 지금도 한국 차계와 제다계에 떠돌고 있는 사실이 곧 한국 제다의 한심한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심지어 어떤 차명인의 차엔 ‘000 명인이 구증구포로 만든 차’, 어떤 비구니의 차통엔 ‘구증구포의 명인 00스님이 만든 차’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도 ‘제다’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제다’를 문화재로 지정했을 문화재청은 막상 한국 차의 심각한 문제가 제다에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차 쇠퇴의 원인으로 제다의 문제와 함께 차 관련 종사자들의 차 인식도 문제다. 다시 말해 한 해에 여러 곳에서 수 차례씩 열리는 차 관련 축제, 전시회 박람회가 이제 적폐청산 차원에서 걸러지고 정돈되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살펴볼 때다. 한국 차의 위기 상황에서 각종 차 행사장에는 제대로 된 한국 덖음 녹차는 없고 시큼털털한 황차, 꽃차, 중국 보이차가 판을 치고 있다. 대부분의 행사가 국비나 지자체 예산, 곧 국민의 돈을 가져가 쓰는 일일진대, 차진흥법 제정과 제다의 문화재 지정으로 적쟎은 차 관련 단체들이나 자칭 ‘차의 대가’들이 이런 돈 타내기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차 관련 학회나 차 관련 단체들의 년중 행사(학회, 차전시회, 차박람회, 차품평회)에서 단 한 번도 ‘한국 차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하면 차를 제대로 만들 것인가?’ ‘한국 전통 다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등에 대해 학술토론회나 세미나가 열리지 않은 것은 한국 차계나 당국이 한국 차의 위기에 대해 인식을 못하거나 그 원인 분석에 전혀 뜻이 없이 ‘마음을 콩밭에 두고’ 귀중한 국민 세금을 축내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한국 차의 현실이 이 모양인데, 어찌 그리 ‘차의 대가’들은 많은가? 한국 차의 앞날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차에 대해 긁어모은 상식이나 중국 차 답습으로 조작된 권위를 앞세워 한국 차계의 주류로 행세하는 이들의 행태가 적폐청산의 차원에서 정리되어야 한국 차의 기사회생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차의 본질과 ‘정행검덕’이라는 차의 품성을 좇기 보다는 허위의 옷을 두르고 차 관련 행사에 따라붙는 물질과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현실에서 한국 차나 한국 차문화의 부흥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식 있는 차인들과 차 단체들의 자성이 여느때보다 절실하다. 한국 차 쇠퇴의 원인이 무엇이고 돌파구가 어디인지, 차 관련 학회는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해결책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는 것을 일차적인 임무로 삼아야 하고, 차 관련 단체들은 이를 기초로 하여 각종 차 관련 행사의 목표를 한국 차의 위기 상황 타개에 맞춰야 한다. 또 문화재청을 비롯한 당국은 모든 차 관련 지원책이 ‘차 진흥법 제정’과 제다의 문화재 지정 취지에 철저히 맞춰져 시행되도록 관리 및 결과 점검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제다를 문화재로 지정한 문화재청이 직접 한국 제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수준 높은 학술 세미나와 토론회를 자주 열어야 한다. 이를 한국 차 현실에 대한 문제인식이 전무한 민간단체에만 맡겨서 구태의연한 적폐 행태를 되풀이하도록 하는 것은 문화재청의 직무유기이다.
최성민 teac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