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신전』과 『동다송』의 위력에 가려진 오해와 진실
-최성민(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철학박사)
제다철이 왔다. 지금 남도의 제다 현장 곳곳에서는 ‘좋은 차’ 제다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 차계의 한편에서 한국 차의 전형은 제다법에 있어서 ‘덖음차’(炒製茶), 그 이상적인 모델은 ‘초의차’로 일컬어지고 있다. ‘초의차’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지금 남도의 제다 현장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초의차’ 관련 단체도 여럿이고 ‘초의차’ 계승자임을 자처하는 이들도 한 둘이 아니며, 아예 ‘초의차’의 명성을 빌려 상품화한 차도 있다. 차와 관련하여 초의를 우상화하는 경향도 있으니 초의를 ‘한국 차의 성인’이라고 일컫는 것이 그것이다. 해마다 해남에서는 ‘초의문화제’가 열려 한국 차문화사에 있어서 초의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를 연다. 이 모두는 한국 차의 발전을 기하고 한국 차의 자존심을 높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나는 해마다 이 즈음 제다를 하면서 차인으로서 초의의 명성이 한국 차 제다와 품질에 끼치는 영향력과 관련하여 초의의 차 행적에 대한 좀더 정밀한 구명과 정의가 이루어 지는 게 초의의 명예나 한국 차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은 지상토론의 발제 삼아 다른 분들의 이론 제기를 기대하며 쓴다.
‘초의차’라는 명칭이나 차인으로서 초의의 명성이 한국 차문화사에서 위력을 갖는 것은 초의가 쓴 『다신전』과 『동다송』에 기인한다. 따라서 이 두 책의 편·저술 맥락과 제다 관련 내용을 분석하여 초의가 ‘한국 차의 성인’으로 불려지는 내력, 또 그것의 정합성 여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초의차’의 실체가 상세히 구명된 바가 없으며, 초의를 ‘한국 차의 성인’이라고 하는 것은 타당한 명칭이거나 초의에 대한 적절한 대우로 보기도 어렵다. 초의가 말했고 익히 알려졌듯이 『다신전』은 중국 책 『만보전서』에 있는 「다경채요」의 초록(抄錄)이고 그 원본은 명대(明代) 장원(張原)의 『다록(茶錄)』이다. 『다신전』 ‘造茶’ 항에 ‘덖음차’ 제다법이 나와 있으니, 이것은 ‘초의 제다법’이 아니라 ‘『다록(茶錄)』의 제다법’ 또는 ‘장원 제다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동다송』은 초의의 독창성이 보이는 저술이다. 그런데 초의는 『동다송』 제58행에 주를 붙이기를 “조다편운(造茶篇云)...”하여 『만보전서』의 덖음차 제다법을 다시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동다송』에 나오는 제다법도 초의가 창안한 제다법이 아니다. 초의가 자신이 『다신전』과 『동다송』에 소개한 이 제다법에 따라 차를 만들었다면 ‘초의차’는 초의의 독창적 제다법이 아니라 당시 보편적인 명대(明代) 산차(散茶) 제다법에 따라 제다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초의가 제다 갈무리에 ‘온돈방 건조’ 과정을 추가시켰다는 기록을 들어 ‘초의 제다법’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온돌방 건조’는 『다신전』과 『동다송』에 소개한 제다 과정 중 둘째솥 ‘건조’ 과정에서 미흡했음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이었을 수 있고, 온돌방이 초의가 창안한 것이 아니므로 ‘온돈방 건조’ 과정을 ‘초의 제다법’의 독창성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무리이다. 당시 명대의 제다법엔 ‘배건(焙乾)’이라 하여 숯불 위에 재를 덮고 그 위에 차바구니를 올려 덖음차나 증제차를 건조시키는 정밀한 방법이 있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한국 차문화사에서 『다신전』과 『동다송』의 위력에 가려져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기록으로 위 두 책보다 훨씬 먼저 나온 이덕리의 『동다기』가 있다. 『동다기』에는 『다신전』이나 『동다송』의 제다법보다 더 정밀하고 정제된 제다법이라 할 수 있는 ‘증배법(蒸焙法)’이 소개되고 있다. 또한 증배법 제다는 오늘날 경남 하동 일대 수제차 제다에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다신전』과 『동다송』에 소개된 제다법을 ‘초의 제다법’으로 인식하거나 절대시하는 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으로서 한국 차 품질 제고와 다양화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우리가 차용하고 있는 덖음차 제다법은 상호 인접한 한·중·일 차문화권에서 명대에 유행한 보편적 제다법의 한 갈래가 초의 당시에 유입돼 전개됐고 우리 환경에 맞게 발전돼 가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게 적절하다. 같은 맥락에서 초의를 ‘한국 차의 성인’이라고 하는 것도 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신전』과 『동다송』이 과연 ‘경전’이냐를 차치하고, ‘성인(聖人)’은 유교의 용어로서 경전(經典) 저술의 반열에 있는 유가의 ‘요·순·우·탕·문·무·주공’과 같은 인물에 대한 호칭이다. 초의는 불가의 수행승으로서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를 쓴 선학(禪學)의 대가이다. 이런 업적과 경력을 남긴 초의가 ‘한국 차의 붓다’ 와 같은 명칭 대신 숭유억불의 모진 탄압을 가해온 당시 유가쪽의 호칭인 ‘성인’으로 불리는 것을 달가워할까?
또 다른 맥락에서 『다신전』과 『동다송』에 대한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 초의는 『다록』 ‘향(香, 차향) 항목의 ’雨前神具曰 眞香(곡우전 신령함을 구비한 것을 진향이라 한다)‘라는 문구에서 신(茶神)의 의미를 체득하여 그의 초록본 이름을 『다신전』이라 하였다. 이는 『다신전』이 초록임에도 불구하고 독창성을 갖는 대목이다. 또 『동다송』에서 초의의 저술 독창성이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제60행에 붙인 주석이다. 여기에서 초의는 ’다도‘를 규정하기를 ’採盡其妙 造盡其精 水得其眞 泡得其中‘이라 하였다. 이는 ’다도‘의 일차적인 목적이 제다와 포다를 통해 다신을 살려내기 위함이고 최종 목적은 그렇게 다신이 구현된 차를 마심으로써 자연합일의 득도에 이르는 것(獨啜曰神)임을 천명한 것이다. 즉 초의의 ’다도‘ 규정에서 제다는 다도의 한 과정으로서 다신을 보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초의의 다도 규정에 나오는 ’중정(中正)‘이라는 말을 빌려 ’한국 다도정신‘을 ‘중정’이라고 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중정은 차탕에 다신이 발현된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지 정신이나 이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다도정신’은 ‘중정’을 구현하기 위한 정신 자세인 ‘성(誠)’ ‘상아(喪我)’ ‘삼매(三昧)’ 등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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